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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장재혁 박사의 교육일지] ⑥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 스포츠

기숙학교의 교육은 교실과 기숙사, 운동장 등 3곳에서 진행된다고 할 정도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필립스 엑시터 역시 학교의 교육 이념인 ‘지식과 선함’을 가르치는데 있어 스포츠를 통한 인성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스포츠를 통해 학생은 리더십과 자신감, 타인에 대한 헌신을 배워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사는 삶을 배운다. 한국에서는 축구·유도부 등에서 운동을 계속할 학생을 제외한 대다수는 체육시간에만 운동했다. 그나마 체육시간도 고학년은 입시준비로 인해 자율학습 시간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의 교육과 비교할 때 미 고교는 일반 학생의 체육 교육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유학생 부모의 경우 데이스쿨과 보딩스쿨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다. 보딩스쿨은 스포츠 등 과외활동이 캠퍼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통편, 추가비용 등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기숙학교의 경우 보통 고교보다 진지한 스포츠 참여를 요구한다. 필립스 엑시터의 경우 최소 10학기 동안 체육 또는 학교 대표 스포츠팀에 참여해야 한다. 학교 대표 스포츠팀(varsity 또는 junior varsity)에 참여하는 학생은 해당 시즌 1주일에 6일 연습 또는 경기에 참가해야 하므로 많은 체력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운동하는 것이 몸에 배지 않은 신입생은 힘들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적응 기간이 지나면 훨씬 건강한 몸과 생활 습관을 갖는 장점이 있다. 새벽에 창 밖을 보면 엑시터 강가에서 조깅하고 있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많은 양의 공부, 다양한 활동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필립스 엑시터는 학교 규모가 큰 만큼 스포츠 종류도 다양해 학기별, 남녀별로 총 30개 팀이 있다. 기본적인 미식축구, 축구, 야구 외에도 동부 학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정과 라크로스까지 다양하다. 학기 말에 학교는 축제 분위기로 들뜨게 되는데 필립스 엑시터의 자매이자 라이벌 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와 전통깊은 스포츠 게임 때문이다. 가을에 열리는 엑시터-앤도버 미식축구 경기는 양쪽 학교의 재학생, 교사, 졸업생, 동문 가족까지 모두 모여 열띤 응원을 벌이는 큰 행사다. 한국의 ‘연고전’이나 ‘하버드-예일’ 미식축구 경기에 버금가는 전통의 라이벌 경기인 것이다. 스포츠가 학교의 명예와 전통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신입생 선발에 있어서도 운동을 잘 하는 것은 강점이 된다. 그러나 신입생 선발에서 학업 실력을 아예 무시하고 ‘운동 특기생’을 뽑는 일은 없다. 그러나 특정 스포츠에 오랜 경력이 있거나 재능이 있다면 분명 플러스 요인이 된다. 미국의 ‘우등생’은 공부만 잘 하는 학생이 아니라 ‘학자-운동선수(scholar-athlete)’다. 운동하느라 시간이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시간 관리를 잘하고 체력이 좋아서 공부도 잘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미래는 성적표에서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가치관, 체력,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 학업이 모두 건강한 균형에 있다.

2010-01-08

[최유진 박사의 '필립스와 리더십 교육'] '하크네스' 가 가져온 토론식 교육

'필립스 엑시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토론식 수업'이다. 엑시터의 토론 수업은 1931년 에드워드 하크네스의 '하크네스 테이블' 기부에서 시작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형태가 아닌 학생이 교사와 동등한 위치에 앉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수업 형태가 탄생했다. 45개의 하크네스 테이블이 교실에 처음 등장한 지 80여년이 흐른 현재도 하크네스 테이블은 모든 교실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인문계 뿐만 아니라 수학.과학.음악 등 모든 과목에서 하크네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학교들이 토론식 수업을 시도하고 자랑하지만 필립스 엑시터처럼 하크네스 이념이 매일 모든 수업에서 실현되는 곳은 없다. '하크네스'란 타원형의 테이블이나 수업의 형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더 큰 개념의 필립스 엑시터만의 언어다. 기숙사에서 친구들끼리 연예인 얘기를 하다가 "마이클 잭슨에 대해 하크네스 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친구에게는 "하크네스 전사(warrior)처럼 굴지 말아"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토론식 수업을 할 수 없는 학생 또는 배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학생은 필립스 엑시터에 오지 않는 것이 좋다. 숙제로 읽은 교과서의 한 부분을 이해 못한 친구의 질문에 그 자리에서 내용을 요약해서 발표하고 관련 실험을 하는 생물 수업 바하의 음악을 분석하다 질문과 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난해한 현대음악까지 파고들다가 '무엇이 음악인가?'라는 토론까지 이어지는 음악이론 수업…. 8~12명의 학생 모두 질문이건 답이건 적어도 한마디씩은 해야 하기 때문에 꼼꼼한 수업 준비는 필수다. 쑥스럽거나 토론 준비가 안되어 있어 숨으려고 해도 숨을 곳은 없다. 하크네스 테이블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학생은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뿐이다. 차라리 모른다거나 준비를 못 했다고 시인하고 도움이 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낫다. 물론 모든 학생이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좋은 하크네스 수업은 아니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필립스 엑시터의 토론 수업이 좋아서 지원했다"고 하지만 많은 9학년생 '하크네스=떠들기'로 받아들이는 경행도 있다. 하크네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말하기보다 듣기에 있다. 서로의 발표를 제대로 듣고 이해해야 질문에 답이 있고 개념의 발전이 있다. 좋은 토론 수업은 꼼꼼히 분석적으로 듣는 것에서 시작해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질문은 뒤떨어지는 학생만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자유롭고 신중한 생각을 통해 질문할 때 하크네스의 빛이 발한다. 최유진 박사 한국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UC어바인을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 신경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소뇌암 치료법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12-13

[최유진·장재혁 박사의 교육일지] 전교생 80% 기숙사에서 생활…자기 관리 못하면 보딩스쿨 지원 피해야

기숙사 생활은 교실과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 함께 보딩스쿨 교육의 세 축 중 하나다. 기숙 학생과 통학 학생의 비율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는데 필립스 엑시터의 경우 80%가 기숙 학생들이다. 기숙 학생으로 자녀를 보딩스쿨에 보낼 것이라면 기숙사 분위기, 학교가 기숙 학생에게 기울이는 관심과 지원 등을 잘 살펴보아야 하고 가능한 기숙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다. 필립스 엑시터는 기숙사에 있는 800여명의 학생들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 첫째는 어드바이징 시스템이다. 전교생에게 어드바이저 교사가 있는데 특히 기숙 학생의 경우 학업 뿐만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어드바이저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숙 학생의 어드바이저 교사들은 모두 캠퍼스 내에 거주한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수업 시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전반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긴밀한 관찰과 조언이 가능하다. 물론 학생과 교사에 따라 학생이 사적인 부분까지 자신의 어려움을 어드바이저에게 터놓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어드바이징에도 한계는 있다. 둘째는 여러 가지 편의 제공에 있다. 학교 식당의 경우 웬만한 사립대 못지않은 양질의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집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먹던 것에 비교해 몇몇 어린 학생들은 학교 식당의 질에 대해 다소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한국식 메뉴가 나오기도 하고 여러 나라의 요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때로는 식탁이 수업의 연장이 되기도 하고 학생들이 교사들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무료 영화를 상영하고 매달 댄스파티, 외부 연주자 초청 콘서트, 마켓과 백화점 쇼핑을 위한 무료 버스 운영 등 학교는 기숙 학생들이 여가를 즐기는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기숙사에서는 매일 저녁 책임 교사가 학생들이 정해진 시간에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지, 정해진 자습 시간에 조용히 공부를 하는지 등을 확인한다. 몇 년에 한 번씩 문제가 될만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걱정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기숙사 생활이 소중한 교육의 장이긴 하지만 때로 어려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가족을 떠나 어린 나이에 스스로 관리하고 생활하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떠나는 소수의 학생들 중 학업이 어려워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기숙사 생활이 어려워서 떠나는 경우도 있다. 가정을 떠나서 학교라는 공동체의 규범을 받아들이고 교사와 학생들간 유대관계 속에서 하나의 일원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런 과정이 과하고 부담스러운 학생이라면 보딩스쿨에 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딩스쿨 교육은 학교가 안전·건강·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주면 학생이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도록 훈련해 성장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재학기간 중 학생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딩스쿨은 좁은 어항이 될 수도 있고 완전한 순환 구조를 가진 하나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바다같은 큰 세상에 입문해 잘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의 장이 된다. 이미 10대에 주어진 자유를 사용하고 주인이 될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한 학생은 미래에 입문할 사회에서 주인된 삶을 영위할 준비를 갖춘 것이나 다름없다.

2009-12-11

[최유진·장재혁 박사의 교육일지] 성적만큼 타인 배려 정신도 중요

필립스 엑시터의 가장 유명한 모토는 ‘Non Sibi’라는 라틴어 표현이다. 번역하면 ‘자신을 위하지 않는’ 이라고 할 수 있다. ‘Non Sibi’는 ‘하크네스’와 같이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필립스 엑시터의 언어이다. 지난해 연말 졸업생들에게 줄 상에 대해 과학교사끼리 회의를 하면서 “그 학생은 공부는 잘 하지만 너무 Sibi한 것 같지?”라고 했던 조크가 섞인 대화가 기억난다. 필립스 엑시터의 우등생이라면 공부를 잘 할 뿐 아니라 동료를 배려하고 돕는 Non Sibi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뿌리 박힌 학교 문화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지난 229년 동안 매년 첫 학생 조회에서 교장은 학교의 창설자인 필립스 박사의 학교 기부 증서를 주제로 연설해 왔다. 이 문서는 학교의 헌법과도 같은 것으로 학교 교육 이념의 기초를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지식과 선함(knowledge and goodness)’으로 간추릴 수 있다. ‘지식이 없는 선함은 약하지만 선함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지식과 선함이 하나가 되었을 때 가장 고귀한 인격이 형성되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형성한다’는 내용이다. 필립스 엑시터는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들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업의 모든 부분에서 하크네스의 지적 탐구를 펼치는 필립스 엑시터 학생들은 학교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Non Sibi를 실천하는 것을 진정한 엑시터 학생다운 행동으로 여긴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정신이 곧 선함의 실천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필립스 엑시터의 Non Sibi는 하버드의 봉사정신과 비슷하다. 하버드 캠퍼스로 들어가는 많은 문 중에 최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문은 덱스터 게이트(Dexter Gate·사진)인데 캠퍼스로 들어가는 쪽에는 ‘들어가서 지혜를 키워라’고 써 있고 캠퍼스에서 나오는 쪽에는 ‘나가서 당신의 나라와 인류를 섬기라’ 고 써 있다. 교육의 본질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이익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고 사회 봉사에 있다는 정신은 필립스 엑시터에나 하버드에나 살아 숨쉬는 정신이다. 필립스 엑시터에서 가장 큰 학생 단체인 Exeter Student Service Organization(ESSO)에는 70여개 클럽이 있다. 700여명의 학생들이 봉사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필자 부부도 ESSO 클럽 중 어린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클럽, 외국 입양아들과 엑시터 학생들이 형제·자매를 맺는 클럽, 한국 문화와 언어를 알리는 클럽에서 지도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않는 교육의 이념은 교사들의 삶 속에서도 자연스레 묻어나는 진실한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 교사는 안식년 기간에 온 가족이 함께 일년간 온두라스의 한 고아원에서 살면서 그들을 위해 봉사했고, 그 후에는 봄방학 마다 필립스 엑시터의 학생 자원봉사자들을 데리고 고아원으로 간다. ESSO 전체를 이끌어가는 교사는 자신의 평생을 통해 지역사회 봉사에 앞장서 왔다. 한국에서는 요즘 봉사활동이 대학 원서의 하나의 아이템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서글픈 소식을 접한다. 사회 봉사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깊이 뿌리 박히지 않은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별다른 특기가 없는 학생에게 한 가지라도 더 원서에 적어 넣을 ‘활동’이 큰 유혹이 되는 현실에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 필자 부부는 사회 봉사정신이 살아 있는 필립스 엑시터에서 그 정신을 실천하는 많은 동료들과 학생들에게 배우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자기 자신만을 위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9-11-27

[최유진·장재혁 박사의 교육일지] ③ 수학도 토론하는 하크네스

하크네스 토론 수업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지적 자유와 책임감을 부여한다. 필립스 엑시터는 과학 수업도 하크네스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고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하크네스는 토론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예측 불허’ 수업이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수업의 기본 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이끌어 가지만 실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질문에 완벽하게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도전인 동시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크네스의 가장 독특한 예는 수학 과목일 것이다. 교과서 없이 자체 문제집만 갖고 수업하는데 아무런 지침도 없이 숙제로 약 8개의 문제를 풀고 다음날 학생들이 풀이를 발표하고 풀이 방법에서 나타난 개념을 토론한다. 공식을 외워 수십개의 문제를 풀었던 기존 수학 시간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SSAT 90점 이상의 우등생들이 수학 수업을 어려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 문제를 두고 여러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료 수학 교사는 엑시터 수학에 대해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공식을 첨부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주어진 문제를 파악하고 접근하는 법을 배우는 것, 논리에 따라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훈련하는 것, 과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더 나은 해결점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교육의 중심이다. 최 박사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수업의 내용을 잘 소화해 내는 한국식 모범생이 필립스 엑시터에 왔다면 인생이 매우 고달팠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과 참여를 강조하는 미 고교 교육을 받고 직접 교우들을 가르치면서 배운 대학 과정, 창의력과 표현력을 요구하는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교육에 대한 가치를 깨달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필립스 엑시터의 하크네스 테이블로 오게 되었다. 장 박사에게 가장 멋진 수업으로 기억되는 것은 한국 중학교 2학년 과학 수업이다. 당시 선생님은 ‘왜 그럴까’ ‘그래서?’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고 정답을 향한 생각을 창의적으로 열어주었다. 바로 하크네스 철학과 통하는 부분이다. 하크네스 정신은 ‘선생님 말씀 따라서 공부 잘하겠습니다’ 보다는 ‘제가 스스로 잘 놀겠습니다’ 쪽이다. 놀이터 모래바닥에서 마음껏 노는 아이들이 기쁨과 만족감으로 성장하듯 새로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불을 내뿜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도록 해 준다. 그 내용들을 자신의 관점과 아이디어로 파헤쳐 보고 답을 찾게 하는 경험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지적 성장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2009-11-06

[최유진·장재혁 박사의 교육일지] 토론·대화로 배우는 ‘하크네스’ 수업

'필립스 엑시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토론식 수업’이다. 엑시터의 토론 수업은 1931년 에드워드 하크네스의 ‘하크네스 테이블’ 기부에서 시작됐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형태가 아닌 학생이 교사와 동등한 위치에 앉아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수업 형태가 탄생했다. 45개의 하크네스 테이블이 교실에 처음 등장한 지 80여년이 흐른 현재도 하크네스 테이블은 모든 교실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인문계 뿐만 아니라 수학·과학·음악 등 모든 과목에서 하크네스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학교들이 토론식 수업을 시도하고 자랑하지만 필립스 엑시터처럼 하크네스 이념이 매일 모든 수업에서 실현되는 곳은 없다. ‘하크네스’란 타원형의 테이블이나 수업의 형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더 큰 개념의 필립스 엑시터만의 언어다. 기숙사에서 친구들끼리 연예인 얘기를 하다가 “마이클 잭슨에 대해 하크네스 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친구에게는 “하크네스 전사(warrior)처럼 굴지 말아”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토론식 수업을 할 수 없는 학생 또는 배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학생은 필립스 엑시터에 오지 않는 것이 좋다. 숙제로 읽은 교과서의 한 부분을 이해 못한 친구의 질문에 그 자리에서 내용을 요약해서 발표하고 관련 실험을 하는 생물 수업, 바하의 음악을 분석하다 질문과 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난해한 현대음악까지 파고들다가 ‘무엇이 음악인가?’라는 토론까지 이어지는 음악이론 수업…. 8~12명의 학생 모두 질문이건 답이건 적어도 한마디씩은 해야 하기 때문에 꼼꼼한 수업 준비는 필수다. 쑥스럽거나 토론 준비가 안되어 있어 숨으려고 해도 숨을 곳은 없다. 하크네스 테이블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학생은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뿐이다. 차라리 모른다거나 준비를 못 했다고 시인하고 도움이 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낫다. 물론 모든 학생이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좋은 하크네스 수업은 아니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필립스 엑시터의 토론 수업이 좋아서 지원했다”고 하지만 많은 9학년생 ‘하크네스=떠들기’로 받아들이는 경행도 있다. 하크네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말하기보다 듣기에 있다. 서로의 발표를 제대로 듣고 이해해야 질문에 답이 있고 개념의 발전이 있다. 좋은 토론 수업은 꼼꼼히 분석적으로 듣는 것에서 시작해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질문은 뒤떨어지는 학생만이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자유롭고 신중한 생각을 통해 질문할 때 하크네스의 빛이 발한다.

2009-10-23

[최유진·장재혁의 교육일지] 전교생 1천명 가운데 한인 학생 1백명…80%가 기숙사 생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와 캘리포니아에서 공립학교를 다닌 필자는 보딩스쿨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 부모는 줄곧 공립학교에 보냈고 과외 한 번 없이 자매를 모두 하버드에서 입학시킨 것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다. 남편 역시 유학생으로 미국 교육을 받았지만 사립 보딩스쿨에 다닌 경험이 없다. 글을 통해 보딩스쿨의 우월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부부는 그동안 교육현장 경험, 현재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깨닫는 미국 교육의 긍정적인 모습을 함께 나누고 이를 통해 자녀들이 참된 교육의 장을 올바르게 누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부부가 교편을 잡고 있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는 뉴햄프셔주 엑시터에 있는 명문 보딩스쿨 중에서도 명문으로 일컬어진다. 1781년 존 필립스 박사 부부가 세운 사립고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보딩스쿨 중 하나이다. 고풍스러운 하버드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붉은 벽돌 건물들, 단정하게 정리된 잔디밭, 스포츠 시설, 교사 사택, 생태계 보호를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을 제한하고 있는 녹지 등 600에이커의 방대한 캠퍼스는 ‘고교’라고 쉽게 믿겨지지 않으며 연중 내내 방문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 규모·SAT 점수·AP 수업·스포츠 순위·명문대 진학 순위·입학 경쟁률 등 학교를 평가하는 대부분 기준에서 절대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필립스 엑시터는 여러 면에서 미국 보딩스쿨의 리더 중 하나다. 필립스 엑시터는 9~12학년과 Post-Graduate(고교 졸업 후 1년을 더 공부하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1000여명의 전교생 가운데 80%가 기숙 학생이며 20%는 학교에서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집에서 통학한다. 전교생의 12%는 외국 국적 학생들인데 한국 학생은 절반 정도다. 유학생은 각 나라의 지원자수 등에 따라 적합한 비율로 조절되지만 한국인은 우수한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국적을 가진 한인 학생들까지 합치면 한인 학생 수는 1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 부부가 필립스 엑시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 캠퍼스의 규모와 아름다움, 교사와 직원의 열정, 과학·음악관 등 우수한 시설에 놀랐다. 다시 방문했을 때 과학부 교사들을 만나서 가르침에 대한 열정과 대학 교수 못지 않은 학구적 수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업 참관을 통해 확인한 학생들의 높은 학습 수준과 반짝이는 학구열에도 놀랐다. 특히 타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대화하듯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수업에 충격을 받았다. 보통 대학 상급 학년이나 대학원에서 하는 수업을 여기서는 9학년 때부터 훈련받고 11학년이 되면 능숙하게 토론을 하며 수업을 받고 있다. 다음 회에서는 필립스 엑시터의 대표적인 교육 방법인 토론식 수업(Harkness Table)을 통해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사고’를 개발하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200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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